[데일리NGO뉴스 = 중앙NGO뉴스/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일제강점기, 상하이 의거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92주기 추념식’이 19일(목)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윤봉길 의사 묘소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명노승) 주관으로 거행됐다.
이날 추념식에는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 명노승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사업회는 '92년 전, 의사님께서 단행하셨던 의거는 온 겨레에 독립의 희망을 안겨주었고, 일제에 항거했던 애국 청년들에게는 독립운동에 대한 강한 의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밝혔다.
국가보훈부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우리 국민, 특히 미래세대들에게 의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유공자께서 일구신 자랑스러운 역사와 숭고한 정신을 기억·계승할 수 있도록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보훈부는 이날 추념식과 관련 "사형은 이미 각오하여 이에 임하여 하등의 할 말이 없다"는 윤봉길 의사의 최후 발언 내용을 타이틀로 추념식에 대해 '12월 19일은 윤봉길 의사의 순국일'이라고 알린바 있다.
국가보훈부는 '윤 의사는 상해 홍구공원(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를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지만 곧바로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과 사형을 선고받은 끝에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라면서 '의사의 유해는 일제에 의해 버려졌고, 광복 후인 1946년에야 조국에 봉환,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국가보훈부가 자료로 밝힌 윤봉길 의사의 추념 안내 소개 글과 자료 사진들이다.
'적성(赤誠)'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매헌 윤봉길 의사를 기억하겠습니다.
1️⃣ 윤봉길 의사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
2️⃣ 한인애국단 단장 김구 선생과 단원 윤봉길 의사
3️⃣ 윤봉길 의사가 한인애국단 단장 김구 선생 앞에서 쓴 자필 선서문과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의 회중시계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의사는 거사일인 4월 29일 아침 백범 김구 선생과 마지막 조반을 들고서도 시계를 바꾸어 갖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4️⃣ 윤봉길 의사의 유품 13종 68건 중 이력서와 유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5️⃣ 의거 직후 영자 신문(The Illustrated London News),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폭탄투척 의거 대판조일신문 호외
6️⃣ 삼의사 국민장 모습.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는 광복 후인 1946년, 김구 선생의 주도 아래 조국으로 되찾아올 수 있었다. 광복 이후 첫 국민장으로 치러진 삼의사 장례식에는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동참하였다.
삼의사의 유해는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 출처: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국립중앙박물관,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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