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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1 (금)

‘국회의원 특권폐지’ 외치던 ‘영원한 재야’ 장기표 별세

◆ 7월 15일 담낭암 말기 밝힌 후 9월 22일 오전 1시 30분에 별세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 마련 조문은 2시 이후부터 가능할 듯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 26일 발인 장지는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물극즉반 (物極則反)이 세상의 이치 극복할 대반전 기대할 뿐”

[부고 / (속보) 데일리NGO뉴스 = 장기표 원장 별세] 

 

 

 

‘영원한 재야’로 불리우며 마지막 '국회의원 특권 폐지'운동을 전개하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오전 1시 35분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우리 사회의 밝은 빛을 비췄으나 주목받기를 원치 않았던 신문명정책연구원 故장기표 원장은 지난 7월 15일자로 자신의 SNS를 통해 담낭암 말기 (4기)이고 다른 장기에 전이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안타까움을 더해준 가운데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 항암치료를 받지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본지 7월 20일자 보도)

 

장 원장은 당시 글을 통해 ‘오늘 저는 말씀드리기 대단히 어려운 일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며칠 전에 건강 상태가 아주 안 좋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되어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죽음을 앞둔 판정에 ‘당혹스럽긴 했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더욱이 자연의 순환 질서 곧 자연의 이법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사람이기에 자연의 이법에 따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라며 초연한 뜻을 전했다.

 

그러나 故 장기표 선생은 밝힌 글을 통해 ‘어찌 회한과 아쉬움, 그리고 못다 한 일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겠습니까?’라면서 ‘더 가슴 아픈 것은 평생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통일, 그리고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해왔건만 요즘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이런 나라 만들려고 그토록 열심히 노력해왔나 싶어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도한 양극화와 이에서 오는 위화감과 패배 의식, 그리고 높은 물가와 과다한 부채, 여기에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온갖 사건 사고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앞으로 더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해 있는 터에 이를 극복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정치는 그야말로 무지의 광란이라 불러 마땅할 팬덤정치가 횡행하여,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듭니다. 더욱이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걱정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단지 물극즉반 (物極則反) 곧 사물이 극단에 치우치면 반드시 대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거늘 이를 극복할 대반전이 일어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본지 7월 20일자 보도된 기사 내용으로 이후 장기표 원장은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오다 9월 22일 항암 치료를 받지않은 가운데 새벽 1시 35븐 입원중인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7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평생 재야운동가로 자리매김을 해왔던 故장기표 원장은 민중당 정책위원장과 개혁신당 대표를 역임했고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특권폐지당 창당을 준비해오기도 했다.

 

2021년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9월 15일 1차 경선에서 바로 컷오프 되었으며 특권폐지당 창당을 시도 하면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를 결성 했던 것이다.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지도층 등 권력을 가질 수 있는 특권층들에 대한 과도한 권리들의 폐지를 강력하게 강조하고 그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뜻을 표출한 것이다.

 

故 장 원장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을 했으나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국민의소리 시민단체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광화문집회를 주도 하기도 했으며 알려지지않은 내용이지만 현재 법안으로 만들어진 '증인보호법'제정을 위해 당시 현 야당 모 의원을 비롯해 시민운동가인 손 모 교수, 김 모 총장, 서 모 대표 등과 함께 기초 안을 반들어 협의 논의 조정을 했으나 현 야당의 정치권 입장만을 담은 안으로 만들어지면서 상실감을 받은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보수 정치권 에서의 새로운 모색 역시 자리 잡지를 못하고 말았다.

 

故장기표 대표에 대해 나무위키는 '대한민국의 시민운동가, 정치인'이라고 표제를 달았고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 시민 운동의 대부이면서도 제도권 정치에 진출하지 못한 이러한 행보로 영원한 재야(在野)라는 별명을 얻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정치활동의 시작은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부르짖던 장기표, 이재오, 이우재는 노동운동의 상징이었던 김문수와 손잡고 1990년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기치로 민중당을 창당한 것으로 이후 어려움을 겪다가 1992년 14대 총선에서 한명의 당선자를 내지못해 자동 해산되었다.

 

故 장 원장은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 후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접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했으며 1995년에야 졸업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한동안 도봉구 쌍문동에서 살며 노동운동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겪었으며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일절 수령하지 않고 생활해 왔다.

 

故 장기표 원장은“누구나 자기 영역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보상금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밝히고 보상금을 수령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故장기표 원장은 보수정당으로 변신을 시도해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소리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이후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등이 구성한 보수통합 논의 기구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에 참여 하는등 나름 파격적인 결과로 미래통합당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활동을 이어갔으나 결국 제도권 진입을 하지못하고 투쟁과 특권변화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담낭 암 판정을 알린 후 두달 보름여만에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2명( 장하원. 장보원)이 있으며 사위 박재성, 오대영 씨로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3층) 에 마련 되었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 및 장지는 26일로 05시 발인 후 장지인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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